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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직도 스크린에 묻어나는 백합향이 진동하는 듯하다. 양풍(洋風)과 화풍(和風)을 오가는 세련된 취향의 장식적 소품들 사이로 부유하는 주인공 다이스케의 번민은 롱테이크의 구사에 기대어 조각처럼 얼어붙은 작위적인 제스처로 내면의 풍경, 그 소실점을 이룬다. 삼각관계의 팽팽한 긴장감은 연극무대세트 같은 실내장면을 지긋이 내리누른다. 이름하여 동명소설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1909)를 원작으로 한 영화 <소레카라>이다. 2 아직도 읽어야 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남겨있다는 건 행운이다. 감기로 둔탁해진 머리에 온갖 걱정 붙들어매고 어제는 소설 <그 후>를 서둘러 구입하곤 내리 앉아 읽었다. 영화를 두 번 보는 듯했다. 그만큼 원작소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리라. 물론 나쓰메 소세키의 담백한 문체를 미끄러져가는(차연) 모리타 요시미츠의 시각적 자극의 과잉은 별도로 하고. (때마침 가을비, 빗길에 미끄러지는 차바퀴가 남기는 여운과 딱이었다) 3 ![]() 다이스케가 히라오카에게 묻는다. "그 후 어떻게 지냈나?" 이 영화와 소설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이 등장인물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기도 하다. 에로물을 연상시키는 언캐니한 인공조명의 야사시함 속에서 불현듯 김광균의 시 <와사등>을 떠올렸다. "차단 한 등불이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내 호올로 어디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그리고 소설 속 다이스케가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해도 평균적인 도시인은 모두 게이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p. 203, 나쓰메 소세키, <그 후> 4 다이스케는 아버지 방 액자에 써진 <중용>의 한 문구, "誠者天之道也(참됨은 하늘의 길)"에 덧붙인다. "그러나 인간의 길은 아니다." 이것이 영화의 결말이다. 한편 다이스케는 미치요와의 일로 아버지와 의절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이것이 소설의 결말이다. 재차, "그 후 어떻게 지냈나?" 아마도 다이스케는 여전히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고등유민(高等遊民)'의 삶이자 생리이므로. 결국은 과잉된 자의식, 그 근대성의 축복과 저주 사이를. 9월 23일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다. 9월 27일에,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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