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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번역하자면, '베갯머리 서책'. 읽는 내내 '자리께'처럼, 스스르 잠들기 전에 손 닿는 곳에 있는 단상 꾸러미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잠들기 전 생각이 맑지 못한데 어찌 꿈이 뒤숭숭하지 아니하고, 아침 첫마음이 청명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2 잠들기 전 생각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11세기 초 궁녀(뇨보)였던 세이쇼나곤의 단상들처럼, 최소한 일상에 대해 무심해지지 않는다면, 그 삶은 남들이 말하는 '빛나는 삶'은 아니라도, 허접한 삶으로 추락하지 않을 터. 당분간 영화와 책 모두 접자는 결심은 마치 술과 담배 모두 일시에 끊으라는 말처럼 가혹한 처사라 주말마다 책을 펼쳐들기로 했다. 세이쇼나곤, 그녀가 남긴 매순간의 흥취에 감정이입하기는 어렵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도 다를 뿐더러, 그녀와 나의 취향도 같을 수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화두를 가슴에 묻고 몸으로 곱씹으면서, 그외의 일상다반사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경쾌한 리듬을 견지하는 그녀의 글들에서 삶의 자세를 또다시 배운다. 3 며칠 전 우연히 펼쳐든 알베르트 망구엘 Alberto Manguel의 <독서일기>. 그가 세이쇼나곤을 언급한다. 문제는 허걱. 내가 읽은 <마쿠라노소시>가 피터 그리너웨이가 동명의 영화로 만든 <필로우 북 The Pillow Book>이라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망구엘이 세이쇼나곤을 말하며 인용한다. "노발리스가 말하길, 타락 후 천국은 잘게 부서져 온지상에 고르게 흩어졌다고." 그 인용문을 보다 문득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이 생각났다. 악마는 인간을 더 추하게 비추는 거울을 만들었고,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져 파편으로 온세상에 떨어진 이야기. 그 이야기처럼 우리가 인터넷에서 목도하는 악의 목록은 그만큼 무수히 많지만, 또한 망구엘이 인용한 노발리스의 말처럼 지상에 흩어진 천국의 이미지들. 너무 쪼개져서 천국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런 것들 그러모을 줄 알았던 현명한 그녀가 바로 세이쇼나곤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4 여름과 겨울. 비오는 날과 햇빛 나는 날. 웃는 날과 화내는 날. 나이 든 사람과 젋은 사람. 하얀 것과 검은 것.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같은 사람이라도 애정이 있을 때와 마음이 변했을 때는 정말이지 딴판이다. 불과 물. 살찐 사람과 마른 사람. 머리가 긴 사람과 짧은 사람. - 본문 중, p. 89 참고로 '지만지고전천줄'은 박영률씨가 200자 원고지 500장 내외로 발췌, 기획한 문고판 시리즈의 이름이다. 위에 인용한 부분은 <마쿠라노소시>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웬걸, 나에게도 병적인 이코의 냄새가 난다. 발췌본에 없던 세이쇼나곤의 더 좋은 구절을 망구엘의 <독서일기>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p.232) 세상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단 한순간도 더 못살 것 같고 영원히 사려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쩌다 미치노쿠 종이 같은 질 좋은 흰 종이, 또는 장식이 들어간 종이라도 얻게 되면 상황을 조금은 더 그냥 참아줄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편집자의 마음도 이렇게 나와 어긋나는 걸, 세이쇼나곤의 모든 구절에 감정이입할 생각은 하지 말자. 그렇다면 이 책은 내가 아직 못본 미치노쿠 종이처럼 그저 좋을 수 있다. 7월 26-27일에,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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