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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판을 펴낸지 얼마 안 된 이 따끈따끈한 책을 읽다 만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3개월이 흘렀으니 시간 참 무시무시하다. 어언 1년 전 책에 관한 책들을 모아볼까 생각했었는데 (역사, 문화사, 소설, 논픽션 등등을 불문하고) 이 분야의 책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지레 주춤했었다. 이러한 현상이 출판문화라는 것에 좀더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읽히는 바, 그렇다고 그것이 독서인구의 급증이나 독서문화의 활성화로 귀결되는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2 이 책은 영문학 강사 자리를 박차고 1982년부터 초판본 거래시장에 뛰어든 릭 게코스키가 전해주는 20권의 책에 대한 뒷이야기들로 구성됐다. 본래 BBC Radio Channel 4에서 "Rare Books, Rare People"란 제목으로 게코스키가 강연했던 내용을 증보한 책이기도 하다. 문학서적 거래상이 영문학을 전공으로 했다는 점에 신뢰가 가기도 하지만, 특정책에 과도한 애착을 보이는 '수집가'와 달리, "제 손으로 키운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p.297) 한참이나 어루다가 책을 떠나보내는 '영문학 전공 거래상'의 심리가 몹시도 궁금했다. 물론, 장사꾼이 지키는 본연의 거리감각으로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재미없지만 20세기 넘버원으로 꼽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U l y s s e s> 초판본을 그가 끝까지 간직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 (예전 언급한 바 있던 실비아 비치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출간한, 초판본 1000부 중, 100부는 초호화 한정판으로, 150부는 프랑스인 기호에 맞춘 대형판으로, 그리고 나머지 750부는 조이스의 요구대로 에게 해 빛 청색 표지로 발행했단다. 릭코스키가 가진 초판본은 바로 그 750부 중 한 권이다) * 여하튼 나는 저자가 이윤추구라는 장사꾼의 공식을 잠시 접어두는 예외가 무엇이었는지를 보는데 만족하기로 하다. 3 이러고 보면 이러한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주식투자처럼 치고 빠지는 이 장사꾼의 노하우가 아니라, 그의 손을 거쳐갔던 책들의 뒷담화임이 분명하다. (하긴 누가 자신의 엑기스인 노하우를 가르쳐주겠는가? 나도는 재테크의 책들 또한 이제는 누구에게나 알려줘도 무관한 정보들에 지나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 정보들이 무용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4 1955년 우여곡절 끝에 자칭 '포르노 사업가'인 모리스 지로디아스(올랭피아 출판사)에 의해 파리에서 출간된 나보코프의 <롤리타 L o l i t a>. 우려와 달리 그 책의 인세로만 평생 나비수집과 집필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나보코프의 행운. 그러나 그레이엄 그린에 대한 나보코프의 헌사가 있는 초판본을 단 보드카 두 잔으로 헐값에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빠른 시기에 시장에 내놓아 땅을 치는 저자 릭코스키. 까다로운 성품으로 악명이 높아 저자가 방문할 때마다 고가의 부르고뉴 와인 퓔리니 몽라셰 P u l i g n y M o n t r a c h e t 한 두어병을 지참, 그 비위를 맞춰야 했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L o r d o f t h e F l i e s>, 어찌나 필력이 대단한지 그 자필 원고는 손으로 쓴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수정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 한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청소년을 문학의 주인공으로 다루면서 전후 공전의 히트작이 됐던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군 T h e C a t c h e r i n t h e R y e>(1951). 역시 만만치 않으신 분.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군복무 중에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집필을 지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와 타자기를 제외한 일체의 접촉을 금했던 은둔형 작가. 자신의 글을 휘청거리게 만들 만큼 지루한 만연체의 소유자 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 S e v e n P i l l a r s o f W i s d o m>(1922). 그러나 지인의 충고를 존중하여 무려 178 페이지에 해당하는 형용사 7만 여 단어를 삭제한 후 탈고한 책. 그 작가의 형용사 취향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 초판본은 작가의 요구에 따라 당대의 유수 화가들의 삽화를 장전한 "호화판"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화는 당시 기한 내 완성하지 못한 소용돌이파(Vorticist) 화가 윈덤 루이스(Whydham Lewis)의 삽화가 릭코스키의 수중에 있었으나 별다른 요구없이 감식안 있는 수집가에게 팔아버리고는 후회했던 일이다. 1960년대 후반 '간달프를 대통령으로!'라는 문구까지 유행시켰던 J. R. 톨킨의 <호빗 T h e H o b b i t>. 릭코스키는 우연한 기회에 그의 검정색 가운을 얻게 되고 1982년 당시 1000달러의 가격으로 팔았지만, 자신이 과거에 머물렀던 옥스퍼드 머튼 스트리트 하숙집에서 만년을 보낸 톨킨을 만나지 못한 일은 내내 후회한다. 일본인 번역자는 살해당했고, 이 책에 대한 항의 폭동으로 파키스탄에서 5명이 사망했던,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T h e S a t a n i c V e r s e s>(1988). 릭코스키는 개인적으로 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직 루슈디 책을 못 읽어봤지만 <천일야화>나, 타하르 벤 젤룬의 <신성한 밤>, 그리고 최근 읽었던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이나, 한국에 번역되는 아랍문학 대개가 마술적 리얼리즘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음을 무디게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주어지는 고유명사가 아닐까하는 굳은 살 같은 나의 편견을 잠시 반성했다. 5 쓰다보니 길어진다. 하긴 이 책을 읽으면서 따로 메모하지도 않은지라 릭코스키가 말한 책의 뒷담화 중 인상적인 것은 인터넷 상에 기록해둘 작정이다. 20권의 책 이야기 중 지금 7권을 말했으니, 나머지는 편의상 다음 글로 넘기려 한다. * 여기저기서 모아본 제임스 조이스에 대한 뒷담화는 일관되다. 쪼들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그의 탁월한 경제관념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고충이었으니, 뒷담화가 성립할 법하다. 책을 낼 돈도 없는데, <율리시즈>의 표지가 그리스의 색인 에개 해 빛 청색이어야한다고 주장한 것만 봐도 그러하다. 3월 13일-14일에,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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