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된 호기심
by uki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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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반 산트, <파라노이드 파크>
                       구스 반 산트 Gus van Sant,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2007

1
우연히 살인을 저지르게 된 스케이트보더 알렉스의
비극적 외상과 사건의 잔상을 그린 영화.
거친 콘크리트 바닥 위에 스케이드보더들이 새기는 스크래치와,
주어진 스케이트보딩 루트의 굴곡에서 놀아나는
10대 소년의 성인세계로의 입문.
콘크리트의 질감을 아로새기는 덜컥거리는 멈춤과,
더 이상의 고공을 허용치 않는 중력의 원심력,
그것이 스케이트보딩의 본질일테다.
우리가 스케이트보딩을 떠올리며 무한한 질주와 고공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이러한 측면에서 화면 비율을 1.33:1로 조율한 구스 반 산트의 장치는 돋보일 수밖에)
세상과 대면하는 10대 소년의 동작은 능숙함이 아니라,
스케이트보딩의 주저함 그것이다.
"바퀴 위에 있는 세상."
(앙투안 띠리옹과의 인터뷰에서 구스 반 산트의 표현대로)

2
엘리엇 스미스와 니노 로타,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이
화면에 적절히 덧입혀진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감각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물질성(materiality),
그 세계의 운동과 물질의 흐름이 인간의 뇌리에 아로새겨지는
리듬과 형식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영화가 재생되는 동안 두차례 등장하지만,
알렉스가 'Paranoid Park'라는 단어를 쓸 때,
서걱거리는 연필의 소리와 질감에 귀기울여보라.
세상은 이미지로 충만하지만,
음악과, 소음과, 분류할 수 없는 잡음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리는 이미지로 전이된다.)

3
일군의 평론가들이 구스 반 산트의
죽음의 3부작(<게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의 에필로그라 평가하는
이 영화는 내게 구스 반 산트의 첫 경험이므로
더 이상의 분석이 어렵지만
회화가 줄 수 없는 영화의 물질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이 영화의 매혹과 인상은 굳이 설명치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각의 내가,
주인공 알렉스처럼 태워없앨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주어진 루트 안에 끊임없는 반복과 반성,
그리고 멈춤과 시작을 되새김질하는 스케이트보더의 리듬을
지금도 재생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 구스 반 산트의 위력일 것이다.

더 읽을 거리 : 영화에 대한 들뢰즈의 저서들.
더 볼 거리 : 구스 반 산트의 다른 영화들
(얼마전부터 어떻게 <굿 윌 헌팅>도 여태껏 안보았냐고,
양두가 종용했었는데,
속도감과 질감에 있어 이 영화와는 다른 구스 반 산트임이 뻔히 보이지만,
이참에 그놈의 <굿 윌 헌팅>도 봐주셔야겠다 : 감독에 대한 오마주의 일환으로)

p. s. 1> 주인공 알렉스의 손은 그 무심한 표정만큼이나
지금껏 보아왔던 손 중 가장 아름다운 손이었다.
p. s. 2> 영화에 대한 포스팅을 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나의 최고의 스틸컷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맥빠지는 일이다.  

11월 29일에, 미로 스페이스에서, 보다.
by ukieo | 2007/11/30 00:38 | 캐비넷 - 몽타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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