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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르헤스와 마르케스를 헷갈려 할만큼 무식한 시기도 있었다. 글을 읽어보지 않고서야, 외국 이름들이란 늘 문맥도 없이 튀어나오는 생경한 단어들이지 않는가? 2 "뭐 재미있는 거 없냐?" 비단 그(anyone)뿐만이 아니었다. 이따금씩 만나는 자리에서 친구들이 대뜸 물어제끼는 질문들 중 하나다. 기억이 가물한 어릴 적이었다면, '오늘 뭐하면서 놀까?'라는 말이었겠지만, 이제는, '내가 뒤로 넘어갈 만큼 나를 웃겨봐'라는, 친구들의 무리한 요구임을, 나는 안다. 이제는. 그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의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를 집어들었다. 3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 본문 중, p.7 아름다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삶을 아름답고도 재미있게 살았다는 말일게다. 마르케스의 빅북 Big Book이라고나 할까, 그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이 클로즈업되는, 이 713페이지의 자서전을 읽고자 한다면, 책 두께 만큼 두꺼운 방석(혹은 그 대용)을 의자에 깔기만 하면 된다. (아니 그렇다면, 책 읽는 각이 안 나올 것이다) 그리고 섣부른 인생의 교훈을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 소설만큼의 압축성이 떨어질 뿐, 이 '자서전'의 매력은 올곧이 '소설'의 매력 그것이다. 한마디로 '자서전'이라는 이름이라 빙자한, 소설의 허구, 그 매혹에 관심이 없다면 이 책을 펴들 생각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4 요즘은 림스키 코르샤코프(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의 "세헤라자데 Scheherazade"에 푸욱 빠져있다. 아마도 세헤라자데만큼이나, 마르케스 또한, 단언코, 자신의 이야기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의도치 않게, 내게 주어지는 영화들의 시퀀스들처럼 이 책은 너무도 술술 읽혀, 어느 덧 그 반을 다 읽어버렸다. 머리맡에 놓여진 자리께(?)처럼 두고두고 볼려고 했는데, 그의 소설과 다름 없는 그 담담한 문체의 '자서전'이 마냥 좋았던 게다. p.s.1> 그래도 명색의 자서전인데, 읽으면서 생각나는 사람들 이야기는 그 다음회로 . . . p.s.2> 역시 오봉팽은 실망이었다. 개업한 날 공짜로 나눠준 쿠키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쿠키를 담은 종이봉투가 삼겹살 기름을 닦아낸 마냥 푸욱 쩔은 걸 보고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맘 먹었었다. 간만에 들렀는데, 플라스틱 컵에 아이스 커피가 왠 말이냐? 난 이런 무심함이 싫다. 10월 11일부터,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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