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 어제는 문득 이러한 생각에, 꽃 모양이 수탉의 볏과 같아 'cockscomb'이라 불리는 맨드라미(계관, 계두) 한 송이를 구입하다. 간만에 집안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현주와 박미와 맨드라미의 다홍색으로 물드는 추억을 곱씹다. 드디어 개시한 난방으로 집안에 훈훈한 공기가 감도니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들으며 시원한 프로즌 다이쿼리 한 잔 꺾으면 딱일 듯한데, 아쉽다. 아쉽다. 꽃말은 '열정'. ![]() 1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오는 한 청년. 의지와 무관하게 완제품이 완성되는 듯 그의 무표정이 흘러간다. 이윽고 딸려 나오는 슈트케이스처럼 내던져진 회색빛 젊음은 이내 문구 'Do Not Enter'가 새겨진 공항의 유리문을 통과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Sound of Silence"가 흐른다. 영화 <졸업>의 시작이다. 2 개시를 알리는 사진은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상징적이어야 한다. 종결을 알리는 사진은 그것보다 덜 중요하다. - 피에르 부르디외, <중간예술>, 242쪽에서 버번 위스키와 빨간색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그와 함께 거리에 흩뿌려지는 젊음의 에너지. 휘청이는 진정성으로부터 배어나오는 어리석음과 유머. 감독 마이크 니콜라스의 프레이밍 Framing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수미상관. 엘레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여전히 묘연하기만 벤자민의 무표정. 졸업과 통과의례(성인으로의 입문)의 상관성이라 . . . 글쎄, '없다'라고 답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졸업>이었다. 11월 3일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다 ![]() 1 ![]() 책선물을 받으면 기쁘기 그지 없다. (물론 친구의 책추천이 주는 기쁨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우연히도 많은 책을 선물받은 11월이다. 2009년 11월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면 비단 이런 측면에서 일 것이다. 2 잊혀져가는 런던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덥썩 집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이다. 5년전 무수히 오갔을 터인데 명료한 기억을 남기지 않았던 그 거리가 묘연 궁금해졌던 참이다. 시선을 차단하고 부득불 끊기는 생각을 이어나가며 런던의 거리위로 오롯한 발자국만을 남기기. 다른 역사를 가진 대도시의 매혹적인 자극과 길항하는 이방인의 진실이 거기에 있다. 3 책을 둘러싼 이야기의 책들은 그만 사자고 결심했건만, (전혀 예상도 못한채 구입했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는가.) 1949년부터 1969년까지 런던의 중고서점 "Marks & Co."에 책을 주문한 뉴욕의 대본작가 헬렌 한프와 서점 사람들 사이에 오고간 편지들을 모아 펴낸 책 <채링크로스 84번지>이다. 전후 물자부족에 시달린 런던에 보내지는 뉴욕발 햄과 달걀. 책이라는 공식적 화두의 뒤안길에 메아리치는 사랑과 배려, 그리고 유머의 긴 여운. 4 이렇다할 관심과 할 말이 없어서 이내 끊기고 말았던 어릴 적 '펜팔'의 기억을 더듬다. (지금이라면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5년전 런던에서 베스트 프렌드였던 살레르노(이탈리아)의 피노에게 편지 한 통 날리고 싶게 만드는군. 아날로그적 감수성 일깨우는 계절, 이른바 가을이다. 이 서간집은 1987년은 영화화되었다. (앤 밴크로프트와 앤소니 홉킨스 주연) DVD를 주문하고는 열렬히 기다리는 중. (하필 일시품절이란다) + 공식사이트 : www.84charingcrossroad.co.uk ++ 이 이야기는 EBS의 "지식채널e"에서도 "두 도시를 오간 편지"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2007년 12월 17일 방송분) 10월 18일에, 읽다. 나쓰메 소세키 夏目漱石 <유리문 안에서>(1915) 김정숙 역, 문학의 숲, 2008 1 정성스런 양장까진 좋은데 왜 소금사막일까, 센치함에 호소하기. 내가 보기엔 명백히 책내용과 무관하기만 한 표지사진이 마뜩치 않다. 내친 김에 읽는다. <그 후> 이후, 혹은 책정리 기념으로. 책장에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작가 몇몇만 남겨놓아도 될 터인데, 인생에의 망집 딱 그만큼, 버리는 일은 쉽지 않구나. 아직은 무리다. 2 나쓰메 소세키의 산문은 소설보다 오래된 느낌을 준다. 소설의 시점이 주목하는 인간관계나 심리의 묘사가 상대적으로 보편성을 담보하는 반면, 산문에서 그의 시선이 머무는 기억과 장면은 그 시대에 보다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낡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의 산문에 나오는 아내의 이야기에 적지 아니 놀랐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그가 거느리는 가족이 없다고 멋대로 상상했었기 때문이다. 그가 소설 <그 후>의 다이스케처럼 만년 결혼 안한 늦깍이 애물단지로 남아있으리라 멋대로 추측했기 때문일게다. 놀라기는 했지만 여하튼 그가 주는 한결같은 인상을 고치는 데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3 "나는 지금까지 남의 일과 자신의 일을 이것저것 너저분하게 썼었다. . . . 하물며 내가 여기에 쓴 것은 참회가 아니다." (본문 148-149쪽에서) 이렇다할 교훈을 주리라는 고압적 자세의 거품 없이, 툇마루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세상사에 눈알을 굴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담백함은 언제나 최고다. 또한 그의 한결같음에 무엇을 읽어도 언제나 같은 말을 맴돌지 않을까, 행복에 겨운 우려와 함께 아직도 읽지 못한 소세키의 책들은 당분간 꾸욱 참고 아껴두자고 다짐해본다. 10월 4일에, 읽다.
|
|